지난해 6월 19일 정부가 고리 1호기 영구정지와 함께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많은 숙제를 안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론화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재생에너지 3020 계획 등 후속조치를 두고도 수많은 논란이 일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선 재생에너지가 자리 잡는 시기까지 원전 역할이 필요하다. 전자신문은 27~2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8 원자력 및 방사선 엑스포'에 맞춰 '원자력의 미래'를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신규 원전 개발사업이 실종된 상황에서 향후 원전 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전문가와 함께 고민했다.

◇참석자

이병식 단국대 교수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종수 서울대 교수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산업정책부 부장

◇사회(양종석 전자신문 부장)=문재인 대통령이 고리 1호기 영구정지와 함께 탈원전을 선포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에너지 시장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나.

◇이병식(단국대 교수)=원자력계는 심각한 변화를 느꼈다. 탈원전 정책 관련 학생과 얘기하면 미래에 대해 많은 불안감을 갖는다. 이를 바라보는 교수 입장에서도 학생이 다른 곳으로 이탈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산업계도 큰 변화가 있었다. 기업 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산업이 축소되는 분위기다. 정비나 보조기기 공급업체 같은 경우는 원전 산업 위축에 대비해 업종 전환을 고려하는 곳도 있다. 이들이 이탈할 경우 예비품 확보나 원전 안전성 보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정부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전 안전과 수출이 정말 중요하다면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종수(서울대 교수)=고리 1호기 영구정지 시점에서 탈원전과 탈석탄이 함께 언급되면서 많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거치면서 이번 정부 입장도 약간은 중립적인 위치로 왔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진행하려던 것을 공론화를 거치면서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오랜 시간에 걸쳐 전환해 나가는 방향으로 했다. 그 이후 8차 전력계획, 재생에너지 3020 등 계획이 나왔는데, 정부가 직접 시장 개입보다 원가 변동요인을 통해 자연스러운 전원믹스 변화를 이끄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정부가 아직도 전기요금 인상을 부담스러워 하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전기요금 인상을 인정하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이 힘들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론화라는 것은 큰 담론을 하는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같은 각론보다 전원믹스·에너지전환 그리고 그 과정에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을 솔직히 애기해야 한다.

◇이상훈(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지난 1년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얼마나 변했는지 체감도 못하는 속도다.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보면 중장기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상당히 급진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원전을 계속 건설해 온 나라다. 한순간에 이제는 새로 짖지 않는다고 결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급진적이다. 신규 설비가 계속 건설되던 산업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상황이었지만 정책 단계에서 논의가 상당히 짧았다. 독일은 원전 산업이 쇠퇴한 지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산업계와 협의해 원전 감축을 추진했다. 당시 독일 원전 산업은 이미 쇠퇴했던 상황이다.

이에 비하면 국내 원전계 입장에서 탈원전은 충격적 정책이었다. 정부가 대안으로 원전 안전운영과 수출전략을 관리하는 투트랙 정책을 펴고 있는데, 너무 세부적인 것까지 짜고 있다.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로 에너지 분야 정부 개입이 리스크 자체를 좌지우지할 정도니 부작용이 생긴다. 정부 개입은 온실가스나 대기오염 분야처럼 규제 수준에 머물고 시장 기능을 살려야 한다.

◇이정윤(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지난 15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월성1호기 영구정지(조기폐쇄)를 결정했다. 정부 탈원전 정책이 지속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신호다. 최근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2050년 재생에너지 비중은 64%로 커지고 가스를 포함한 화석에너지는 29%, 원자력은 7%로 축소된다고 한다. 미래지향적으로 볼 때 재생에너지 중심 정부 정책은 미래시장을 선점한다는 측면에서는 다소 늦었지만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산업구조 개편도 고려할 만하다. 에너지 전환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동시에 기존 원전산업계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직업 전환 대책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취소되면서 원자력 산학연 인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원자력 기술 인력과 관력 학과 학생은 어떤 미래를 바라봐야 하나.

◇이병식=한수원 직원이 1만여명, 중소기업까지 따지면 10만명 정도가 원자력에 종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인력은 기존 인력과 신규 인력으로 나눌 수 있다. 기존 인력은 일부 사업영역 전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력을 재생에너지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수원도 신규 아이템 찾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신규 인력에 대해서는 교수 입장으로 학생 얘기를 하면 취업부터 걱정이다. “이제 어떻게 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지금 상황에서 다른 분야에 취직은 할 수 있는지 등을 궁금해 한다. 그나마 공기업 쪽이 유망 일자리지만 여기도 여력이 없다. 공기업도 신규 채용에 부담을 느끼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숙제도 안고 있다. 중소기업은 사업을 축소해야 하는 만큼 여력이 없다. 너무 급박하다.

◇이정윤=핵공학 같은 분야는 가동원전 안전과 사용후핵연료, 폐기물 등을 위해 당분간 역할이 꾸준히 필요하다. 기계·전자 등 원전산업에 종사한 다른 전공 분야는 에너지 시장에서 충분히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네덜란드 풍력연구소가 대표 사례다. 해상풍력발전기 구조해석에는 원자로 구조해석을 수행한 경험인력이 활용될 수 있다. 원전의 터빈정비 인력은 대형 풍력터빈 정비 분야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수요 축소가 예상되는 핵공학과 학생 수는 줄여 융합공학 형태로 통·폐합하거나 학부를 없애고, 대학원 과정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자력 산업계 고급 경력 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산학연 구조조정에 의한 원자력 산업의 연착륙을 모색할 시점이라고 본다.

◇이상훈=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교육부가 신경을 써야 한다. 독일도 원전 기술 선진국이었지만 지멘스가 관련 산업에 손을 떼면서 원자력 발전 학과 과정이 조정됐다. 우리도 충격파가 있는 상황이다. 산업부가 원자력 인력 유지를 위한 여러 가지 안을 만들고 있는데, 대학 원자력 전공자 대책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장기적인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이종수=시민단체 입장에서는 탈원전 선언이 급박했다고 보긴 어렵다. 고리 1호기는 경제성 차원 문제가 있었고 영구정지도 이전 정부에서 결정했던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이후 발전소가 건설됐다 하더라도 계속 제기된 건설반대 문제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석탄화력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 비중을 키운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를 더 지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발전산업은 그동안 고도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 증가로 성장했다. 에너지 전환은 기술·인력을 넘어 에너지 산업 전반의 문제다. 전원믹스 전환이 아닌 '업(業)'의 전환을 해야 한다. 전통 발전업 성장력은 이제 한계가 왔다고 본다.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사회=원전 산업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상생 방안은 무엇일까.

◇이병식=재생에너지 쪽에서 원자력과 같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해외에 나가려면 대형 프로젝트를 개발해야 한다. 설비 운전 안전과 전력생산의 안정성 부분에서 원전의 많은 노하우가 신재생의 덩치를 키우는데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지역 갈등과 환경영향평가 문제를 겪을 것이다. 그동안 원자력계가 겪었던 경험이 도움될 수 있다.

다만 핵심 인력이 국내에 남아있어야 하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고급 인력 유출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미래 비전이 없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상훈=과거부터 상생을 많이 얘기하는데 세계적으로 전원믹스 상으로 상생을 얘기하는 곳은 없다. 원전과 신재생은 전원믹스로 어울리기 힘든 속성이다. 에너지 전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전력기술, 한수원 등 원자력 기업이 기존 직원을 이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신재생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3020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분야가 해상풍력이다. 하지만 아직도 누가 대규모 프로젝트 주체가 될지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부분에서 원자력 직군이 종사하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정부는 원전 해체와 수출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 시대에 원전 산업의 앞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병식=원자력계는 에너지 전환 정책 나오기 전부터 수출시장을 준비했다. 하지만 상황이 갑자기 바뀌다보니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원전 서플라이 체인이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종국에는 외국에서 부품을 사와야 하는데,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가격은 비싸다. 결정적으로 실제 장비를 설치하는 인력이 필요하다. 장비를 설치할 때 노하우만 가지고는 힘들다. 서플라이 체인이 붕괴될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이 상당히 크다. 개인적으로 정부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신울진 3·4호기를 지으면 해외 수출까지 공백을 메꿀 수 있다고 본다. 60여년에 걸쳐 탈원전 한다고 하지만 20~30년 안에 탈원전이 올 수도 있다.

◇이정윤=서플라이 체인 붕괴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도 해외 공급 네트워크를 통해 사업을 충분히 유지했다. 공급회사도 원자력 시장만 보지 말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공급회사가 원자력 시장만 바라보다 20년 뒤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신규 건설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국내 서플라이 체인이 무너질 수는 있겠지만, 종합시공(EPC) 업체 등을 통해 해외구매가 가능할 것이다. 지금 국내 원전 산업은 발주와 설계·시공이 다 따로 돌아간다. 대기업이 중간에 매니지먼트(관리) 역할만 하는 구조다. 한국전력기술 같은 엔지니어링 회사가 직접 EPC 역할을 하며 중소기업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종수=외국에서 부품을 사들여야 한다면 원자력이 그만큼 비싼 에너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서플라이 체인 유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석탄과 원자력도 여러가지 사회적 비용과 사고에 대한 위협 비용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에는 적정 비용이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온실가스 감축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원전 상당량이 운전을 안 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원전과 석탄이 줄었을 때 37% 감축 목표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등에 대한 전체적인 포트폴리오를 가져가야 한다. LNG 사용이 늘어나는 상황을 대비해 호주·카타르에 집중된 가스도입 채널도 다변화해야 한다.

◇이상훈=에너지믹스라는 것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원전 3기가 상업운전 직전이고 2기는 건설 중이다. 당분간 우리는 이들 원전 덕분에 전력믹스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선택권을 가질 여유가 있다.

원자력계는 신규 원전 5개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3020계획이 핵심이라고 본다. 15년을 경험해보니 재생에너지 확대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재생에너지도 적정한 보상체계가 마련되고 비용 효과적으로 보급해야 시장이 확대된다. 이를 위한 요금 관련 이슈도 해결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에너지전환과 재생에너지 선호도는 있지만, 지불의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정리=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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