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수출형 원전이 유럽 사업자 요건 인증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영국과 체코 원전 수출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희소식에도 국내 원전업계는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정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수출 사업 추진이 어려운 탓이다. 유럽 원전 수출 시장의 관문을 넘어선 지금 정부의 적극 지원이 요구된다.

EU-APR 인증심사 결과
EU-APR 인증심사 결과

한국수력원자력은 9일 유럽 수출형 원전 'EU-APR'의 표준 설계가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 본심사를 최종 통과했다고 밝혔다. EU-APR는 우리나라의 수출형 원전 'APR 1400'을 유럽 안전 기준에 맞춰 설계한 모델이다.

APR 1400은 첫 원전 수출 사례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과 현재 건설 재개 여부가 공론화에 부쳐진 신고리 원전 5·6호기에 적용된 모델이다. 우리 정부가 공사 중단을 검토하고 있는 모델의 성능을 유럽연합(EU)이 먼저 인정했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EU-APR의 EUR 인증으로 한국의 우수한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고 국산 원전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면서 “앞으로 유럽 사업자들과 전략 협력 관계를 구축, 유럽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사업자협회는 EUR 인증 과정에서 EU-APR 안전성, 경제성 등 요건을 심사했다.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중공업 등 원전 산업계는 2011년 12월 EUR 인증 심사를 협회에 공식 신청하고 2년에 걸쳐 예비평가를 받았다. 2012년 11월 본심사를 시작했다. 최종 인증까지 걸린 기간은 24개월, 역대 EUR 본심사 가운데 가장 최단 기간에 일정을 마치면서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알렸다.

EU-APR 조감도
EU-APR 조감도

본 심사에서는 20개 분야 4500여가지의 방대한 요건이 요구됐다. 원전 산업계는 620건에 이르는 기술문서를 제출하고, 800여건의 질의응답을 수행했다.

EU-APR와 APR 1400의 가장 큰 차이는 중대 사고 대응 개념이다. 노심이 녹는 중대 사고 발생 시 APR 1400은 원자로 용기 외벽에서 냉각수를 이용해 냉각하는 설비를 갖췄다. EU-APR는 노심 용융 물질을 원자로 건물 내에서 냉각하는 시스템이다.

EUR 인증 통과로 한국전력공사와 한수원이 추진하고 있는 영국·체코 원전 수출 길도 열렸다.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은 14조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다. 향후 운영 및 유지보수까지 수출 유발 추가 효과도 기대된다. 유럽사업자협회는 12개국 14개 원전사업자로 구성됐다. 회원국들은 이 요건을 유럽권 건설 사업의 표준 입찰 요건으로 사용한다. 영국과 체코도 회원국이다.

인증 통과는 유럽 이외 지역 수출에서도 긍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도 원전 도입 시 EUR 요건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원전이 이들 시장에도 수출할 수 있는 인증을 획득한 셈이다.

UAE 바라카 원전 현장 전경
UAE 바라카 원전 현장 전경

원자력계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매달리지 말고 수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현재 정부는 원전 수출과 관련해 “지진이 없고 원전이 밀집해 있지 않는 등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국가에 수출한다면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국 내 원전 산업을 멈춘 상황에서 수출 시장 개척은 현실상 어렵다는 것이 원전계의 입장이다. 지난달 방한한 윌리엄 맥우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 사무총장은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도 여러나라가 있다”면서 “수입국 입장에선 자국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사려고 할 것 같지 않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14일 경주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 총회를 두고도 불만이 제기됐다. 원자력계는 WANO 총회를 우리 원전의 경쟁력을 알리는 기회로 활용하려 했지만 정부가 미온 대응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0일 원전 수출전력협의회에서 정부의 명확한 입장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원자력계 관계자는 “EUR 인증에 이어 미국에서 추진하는 US NRC 인증도 마지막 결정만 남은 상태”라면서 “미국 인증도 내년 초에 무난히 발급될 것으로 기대돼 원전 수출에 정부의 적극성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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