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왼쪽부터)이길용 선생, 송진우 선생, 여운형 선생(사진=국가보훈처)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왼쪽부터)이길용 선생, 송진우 선생, 여운형 선생(사진=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길용·송진우·여운형 선생을 ‘2021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세 명의 선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일장기 말소사건’의 실행자와 언론사 책임자들로 암울한 시기에 민족정신을 새롭게 일깨운 역할을 했다.

1936년 8월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조선 청년 손기정은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손기정의 쾌거는 일제 식민지배로 고통받던 우리 국민들에게 “조선의 청년이 세계를 제패했다”라며 큰 자부심과 긍지이자 희망이 되었다.

그러나, 이날 시상식에서 월계관이 수여되는 순간에 ‘기테이 손’이라는 일본식 이름이 호명되었고 일장기가 게양되었으며, 기미가요가 흘러나왔기 때문에 우승에도 불구하고 손기정은 고개를 떨궈야 했고, 훗날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시상식’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울러 일제와 일본어 발행 신문들은 일본인으로서 ‘손 기테이’를 일제히 칭송하고 나섰다.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는 “가슴에 나라 잃은 한을 품고 혼을 불살라 이룬 조선인 손기정의 우승마저 일본에 빼앗겨서는 안된다”라며 민족지 언론으로써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다.

먼저, 동아일보 체육부장이었던 이길용 선생은 조선 청년이 세계를 제패했는데 그 사실을 제대로 쓸 수 없다는 분함에 대담한 생각을 하게 되고, “손기정의 사진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면 어떨까”라고 해서 미술 담당인 이상범 기자와 함께 손기정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버렸다.

이후 이 사실을 안 총독부에 의해 이길용 선생과 이상범 기자 등 5명은 종로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구타로 곤욕을 치렀고, 이후 겨우 풀려났지만 일제의 압력으로 강제로 기자직에서 면직되었다.

이것이 바로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했던 ‘손기정 일장기 말소사건’이다.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송진우 선생은 일장기 말소사건 이후 민족지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1937년 6월까지 10개월 동안 총독부로부터 동아일보 정간 협박에 맞섰다.

그러나, 총독부는 송진우 선생을 비롯한 임직원을 강제 면직시키고 관련 업무 종사를 못 하도록 명령했다.

조선중앙일보는 1933년 2월 여운형 선생이 사장으로 부임해 이끌어 오던 신문으로, 1936년 8월 13일자(조간 4면 우측 하단)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었다.

조선중앙일보는 9월 5일자 석간에서 당국의 처분이 내리기 전에 자진 휴간을 선언했고, 이후 총독부가 속간을 허락하지 않아 반강제적인 휴간이 계속되었다.

여운형 선생은 속간을 전제로 한 총독부의 타협책을 거부하다 물러나고 말았고, 결국 조선중앙일보는 복간하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처럼 일장기 말소사건은 자주독립을 꿈꾸던 우리 민족의 염원과 저항정신을 세상에 증명한 거사인 동시에 광복에 이르는 긴 여정의 한 걸음으로 기록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길용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송진우 선생에게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그리고 여운형 선생에게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이어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차미경 기자 (cha@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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