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퇴장을 준비하는 R&D 계획이다.” “줄여도 너무 많이 줄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8일 발표한 '미래 원자력기술 발전전략'을 접한 원자력 학계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다. 국내 원자력 산업의 핵심인 원전 성능 개선 관련 항목이 빠지면서 원자력 R&D의 큰 줄기가 훼손됐다는 반응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강조한 만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원자력 R&D 5개년 계획이 나온 지 1년 만에 대폭 수정안이 나온 것에 우려를 표했다.

2018년도 미래원자력기술 발전전략 투자 계획
2018년도 미래원자력기술 발전전략 투자 계획

가장 큰 우려는 30% 이상 줄어든 R&D 투자금액이다. 정부는 당초 5개년 계획에서 2021년까지 약 1조3423억원 투자를 계획했다. 이번 발전전략 예산은 약 9100억원에 불과하다.

내년 투자 금액은 38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50% 가까이 감소했다. 원자력계는 향후 진행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총 금액이 크게 줄어든 만큼 다수 프로젝트가 축소 또는 취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통 원자력 분야 연구 언급이 없다는 점도 우려된다. 원전 안전과 해체·사용후핵연료 등 현안에 대한 R&D도 필요하지만 원자로 성능개선, 미래 원자로 개발 등 중심축이 없다. 이 같은 R&D 정책은 사실상 원전 산업 퇴로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나마 지금은 'APR 1400'이라는 믿을만한 수출형 원자로 모델이 있지만 후속 R&D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세계 원전 시장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실제로 발전전략에서는 기존 5개년 계획에 담겼던 원전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미래 대비 고유 원자로 핵심기술 개발 내용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상용화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소듐냉각고속로(SFR)과 파이로프로세싱 등 4세대 원자로와 핵연료재처리 관련 연구도 빠졌다. 차세대 원전 후보가 될 수 있는 원자로 연구 지원이 제외된 셈이다.

파이로프로세싱 언급이 없는 것은 이번 정부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닌 '폐기물'로 바라보고 있다는 평가다.

원자력계는 이날 발표된 발전전략이 현 정부 '탈원전 정책 맞춤형 R&D' 계획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8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신규 원전 6기 건설계획이 취소됐다. 어차피 내수시장이 없는 산업에 미래 경쟁력을 위한 R&D 투자는 의미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정부가 강조한 해체기술과 사용후핵연료 기술개발은 원전 산업 사이클의 일부에 해당된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가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다.

APR 1400 차기 모델인 'APR+'도 빛을 보기 힘들다. APR+는 1500㎿급 원자로로 모든 전원이 상실되는 사고에도 원자로를 안전하게 냉각시킬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정부는 APR+가 적용될 예정이었던 천지원전 1·2호기 계획을 취소했다. 축소된 R&D 예산으로는 기술 검증을 위한 실증프로젝트를 실시하기 힘들다. 민간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실증사업을 벌이는 방법도 있지만, 시장이 보장되지 않은 기술을 위험을 감수하고 개발할 가능성은 낮다.

최근 영국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으로 되살아난 원전 수출시장 기대감도 꺾이게 됐다. 향후 4세대 원전으로 세계 시장 경쟁구도가 바뀌면 APR 1400 이후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

발전전략이 연구용 원자로와 중소형원자로(SMART) 해외수출 지원 계획은 담았지만 기존 경수로 수출 관련 내용은 없다. 전체 예산 규모도 작아 수출지원 R&D 대부분이 원자력 융합분야나 정책연구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원자력 학계 관계자는 “발전전략은 경제성과 안전성이 높아진 새로운 원전 개발보다는 탈원전 연구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우려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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