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은 아주 가벼운 금속이다. 그러나 산업에서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은백색 광물을 놓고 세계 각국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인다. 전기차 시대 개막으로 이차전지 시장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차전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휴대폰 배터리의 4000배에 달하는 리튬이 쓰인다. 공급은 아직 더디다.

배터리 제조사는 리튬 확보에 속도를 낸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장악한 일본 파나소닉은 중국 베이징자동차와 지난해 텐진에 전기차 부품 합작 공장을 설립하는 등 전략적 행보를 보인다.

리튬은 소수의 몇몇 국가만이 보유, 생산한다. 리튬의 보고로 불리는 육상염수(소금 호숫물)에 한해서 보면 남미의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이 3개국에 세계 리튬 매장량의 77%가 부존돼 있다. 이곳을 '리튬 트라이 앵글'로 부른다.

우리나라는 2009년 한국광물자원공사를 중심으로 포스코, 삼성물산, LG상사, GS에너지등이 힘을 합해 진출했다. 첫 진출 국가는 아르헨티나다. 아르헨티나는 리튬 매장량 세계 2위, 생산량 세계 4위다. 2010년 6월 광물자원공사는 LG상사, GS에너지와 함께 아르헨티나 살데비다 리튬사업에 진출했다. 한국이 진출한 살데비다 리튬 프로젝트는 일본, 중국도 손을 뻗지 못했다. 이 사업에서 한국은 지분 30%를 확보했다

두 번째 진출국은 칠레였다. 세계 최대 리튬 생산국이기도 하다. 칠레는 리튬 매장량은 적지만 품질이 좋았다. 삼성물산은 광물자원공사와 함께 2010년 11월 진출에 성공했다. 여기서도 지분 30%를 확보했다. 칠레 NX우노 프로젝트는 칠레 아타카마 염호로 부존량이나 개발여건이 모두 우수해 당시 계획으로는 이르면 2013년부터 우리나라에 리튬을 안겨줄 유망사업으로 평가받았다.

마지막 나라가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볼리비아다. 볼리비아 리튬의 원료인 염수는 칠레나 아르헨티나 염수에 비해 함량이 낮고 불순물이 많았다. 기술적 이유로 채산성을 확보하지 못해 이 사업은 방치됐다. 볼리비아 정부는 개발 의지가 강했다. 가장 우수한 제조기술을 제공하는 국가나 기업에 리튬개발 사업권을 주겠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일본, 중국, 프랑스 등은 우리보다 먼저 기술보고서를 제출했다. 한국은 광물자원공사가 볼리비아 국영기업인 코미볼과 양해각서를 맺었다. 2010년 3월 포스코, 한국지질자원연구원등 3개 기관이 리튬 제조기술 사업단을 구성했다.

그 해 8월 12일 볼리비아에서 공개 발표회를 열고 리튬제조 공정 3건을 선보였다. 한국은 염수를 화학반응으로 분해해 1개월 내 리튬을 초고속으로 추출하는 독보적 기술을 확보했다. 핑크빛 이야기의 서막 같지만 여기까지다. 지금 우리나라의 리튬 사업은 2009년 이전과 다를 게 없다.

아르헨티나 살데비아 사업은 2015년 7월 한국 측이 옵션을 포기하고 지난해 5월 지분 전체를 운영사에 양도했다. 칠레 LX우노 사업 역시 2013년 10월 환경영향평가 지연을 이유로 투자비를 회수하고 철수했다. 볼리비아 프로젝트는 2013년 7월 한국 측의 사업 포기로 개발권은 중국에 넘어갔다. 모두 지난 정부 시절 일어난 일이다.

최근 리튬 가격은 급등했다. 배터리 제조사는 다시 리튬 확보에 나섰다. 삼성SDI는 칠레 정부가 진행한 리튬개발 사업 입찰에 참여해 1차 선정사 7개 중에 포함됐다. 삼성물산이 4년 전 포기한 칠레 아타카마 지역의 리튬 개발에 계열사가 뛰어든 것이다. 선정사 3곳은 중국기업이다. 최종 선정은 내년 초 발표된다.

이 사례가 무엇을 말하는가. 자원개발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일희일비할 사업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자원은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투자 성패에 민감한 민간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공기업 역할이 중요하다. 리튬을 통해 이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닫는다. 우리나라는 이차전지 최대 수출국이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고스란히 우리 경제의 짐이 된다.

강천구 영앤진회계법인 부회장 kkgg10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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