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국내 발전시장에서 유류발전소가 다시 가동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수년간 문을 닫았던 유류발전소가 국제유가가 최저점을 기록하면서 LNG발전소를 제치고 급전순위에 들어갔다. 폐기를 앞둔 발전소가 국제 에너지시장 변동에 가치가 급부상하면서 재역할을 한 사례다.

최근 발전 업계에서 정부의 탈 원전·석탄 정책과 관련해 발전설비 최종 폐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원전과 석탄화력 설비를 유지해 예비율 측면에서 역할을 하고 국제 에너지시장에 변수가 발생했을 때 언제든지 재기용할 수 있는 상비군으로 두어야한다는 의견이다.

발전 업계는 LNG발전과 신재생에너지로 국가 전원믹스를 짜려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모험'으로 본다. LNG 수입 채널을 확대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키워도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는 전기 생산 수단을 많이 갖고 있는 편이 좋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원전보다 낮아져도 원전과 석탄화력은 유지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유류발전소가 다시 가동했던 것처럼 국제 정세에 따라 원전과 석탄이 언제든 다시 필요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한 전력생산도 감안해야 할 문제다. 정부와 달리 업계는 신재생에너지가 제대로 된 전력예비율 역할을 해줄지 의구심을 갖는다. 지금도 신재생에너지는 전체 설비에서 계절에 따라 10~15% 정도만 전력예비율에 포함되는 실정이다. 기상조건의 영향을 받는 만큼 발전량이 일정치 않아 현실적으로 급전지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전과 석탄화력 설비유지는 시장 차원에서도 이점이 크다는 견해다. 현재 국내 발전시장 주요 문제 중 하나는 LNG발전 사업자의 적자다. 정부가 탈 원전·석탄과 함께 LNG발전을 키우겠다는 방향을 제시했지만, 정작 LNG발전 업계는 사업여건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원전과 석탄화력이 빠지는 만큼 신규 LNG설비가 들어오는 이유가 크다.

원전과 석탄이 빠지고 LNG발전과 신재생으로만 전력수급을 맞출 경우 발전 우선순위는 신재생이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필요할 때 급전지시가 어려운 신재생 특성상 이들이 생산한 전기로 먼저 수급을 채우고 부족한 부분을 LNG로 메꾸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효율이 좋은 신규 LNG가 먼저 가동된다. 결국 원전과 석탄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들어온 신규설비가 우선순위를 가져가면서 기존 LNG발전은 적자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업계는 원전과 석탄화력을 예비율 설비로 활용해 발전소 신규건설을 줄이고, 기존 LNG발전을 활용하는 것이 시장측면에서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산업부는 탈 원전·석탄의 최종 목표점을 설비해체로 보고 있다. 설비를 남겨두자는 주장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를 예비율로 남기는 것과 영구정지는 상충된다는 입장이다. 설비를 유지할지 여부는 영구정지 시점에서 재검토 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영구정지 후 해체'가 정부의 방침이다.

발전 업계 관계자는 "지금 탈 원전·석탄 논란은 설비해체를 전제 조건으로 두고 있다"며 "굳이 보유하고 있는 설비를 해체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정형 기자 jenie@green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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